심영숙의 좋은 땅 / 피천득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고

2024-12-31     뉴스메이트(newsmate)
        심영숙 / 남산기독교사회복지관장

우리 복지관에는 독서 모임이 있다. 비록 몇 명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벌써 2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도 탈락한 직원도 있지만, 꾸준히 참여하는 직원들 덕분에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모임이다.

이번 달 책 선정은 내 차례였다. 그동안 자기개발서를 많이 읽어 와서 이번에는 문학책을 한번 읽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정한 책이 피천득님의 수필집이었다.

아마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인연이라는 수필은 그 당시 나를 매료 시키기에, 충분했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은 시절 그의 수필 속에서 맛보는 사랑이 너무 아름다웠다. 17살 청년 피천득은 당시 시대 상황과 나이 차이로 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본 소녀 아사코를 만나 풋풋한 사랑의 감성을 글 속에 얼마나 달콤하게 표현했는지 글과 함께 나의 사춘기도 녹아들었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정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세 번째 만났을 때 아사코는 결혼을 했었고, 필자의 기억 속에 소녀는 어디로 가고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만남은 아니 만났으면 좋았다고 했을까. 뒷말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작가는 말없이 소양강으로 가을을 보러 간다고 했으리라.

독자인 나는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여백의 미를 마음껏 누려 보았다.

그때 이후로 많은 일들 속에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겨두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세 번째 만남 뒤에 가져야 하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글을 모방하길 좋아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수필 중에, 한참 뒤편에 실려 있는 인연부터 찾아서 읽고, 또 몇 번을 읽은 것 같다. 보고 또 보아도 글도 사랑도 아름답다.

이 책은 1930년대부터 쓴 글로 시작되었다. 30년대가 언제인지 계산도 되지 않은 연도인데 그때부터 작가는 글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1910년에 태어나셨다. 그래도 20대 초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50년대, 60년대 수필도 가득했다. 모두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글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책의 제목이었다. 수필집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제목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느낌을 잠시 가졌다. 독서 회원인 장부장에게 책 제목을 이야기하니까, “나의 사랑하는 생활??” 하면서 몇 번을 다시 물어보면서 제목을 잘못 말하는 건 아닐까? 라는 느낌으로 되묻기도 했다. 결국 나만의 생각은 아님을 확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수필은 나를 춤추게 했다.

작가는 살아 숨 쉬는 모든것, 살아있는 모든 자연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그도 좋아하고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한다. 웃는 얼굴을 더 좋아한다.” 미안하지만 나태주님의 싯구 한구절을 잠시 빌려오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나는 이른 아침 종달새 소리를 좋아하며 꾀꼬리 소리를 반가워하며 봄 시냇물 소리를 즐긴다.” 나도 그렇다.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이 문장에서는 나도 그러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수필은 원래 제목이 초원이었다고 하는데 이 책 제목을 왜 그렇게 바꾸었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표지에 실린 작가의 웃음이 너무 좋았다. 글만큼 순수해서 닮고 싶었다.

이 책의 초반부에 실린 장미라는 수필은 작가의 웃음이 연상되는 글이었다.

처음에는 글의 주제도 없고 무슨 메시지를 주려고 쓴 글일까. 감히 건방진 생각을 잠깐 했다.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로 시작한다.

장미를 사 들고 오다가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한 송이씩 두 송이씩 주고 나니 정작 집에서 꽃 사 들고 오기를 기다리는 꽃병을 보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꽃 일곱 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일기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될까를 한참 생각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글은 아름다운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나 혼자만의 결론을 얻어 보았다.

이 책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들이 있다. 작가가 끔찍이도 사랑하는 두 여인이다. 한 명의 여인은 너무도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이고, 또 한 명의 여인은 필자의 딸 서영이었다. 글의 곳곳에 두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글을 한층 풍성하게 해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이 글은 엄마라는 글 속에 한 문장이다. 이 문장뿐 아니라 글 곳곳에, 엄마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 숨어 있었다.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위의 글은 「서영이」라는 글 속에 첫 문장이다. 딸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 딸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얼마나 될까. 그런 딸을 둔 아버지가 부럽고, 그런 아버지를 둔 딸도 부럽다.

이제 한 마디만, 더 하고 글을 끝내려고 한다. 이 책에 아주 짧은 수필 중에 한편인 「기도」의 마지막 문장이다.

“내가 읽은 짧고 감명 깊은 기도가 있으니, ”저희를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