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숙의 좋은 땅 / '나의 선생님'
지난주 화요일 오후 시간이었다.
오전에 복지관에 행사가 있어서 정신없이 바빴다. 2백여 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정월 대보름 찰밥 나눔 행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관장실을 가득 메웠던 내빈들도 다 가시고 조금은 조용한 시간이었다.
한숨 돌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
직원들을 포함하여 오뚝이 친구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내 방 사무실이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모르는 분 같아서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마스크를 살며시 내리는데 깜짝 놀랐다. 사전 연락이 없었기에 생각지도 못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셨다. 1, 2학년 때는 과학 선생님이었고, 3학년 때는 담임을 맡아 주셨던 손중달 선생님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고 하시면서 어렵게 사무실을 찾으셨다고 하셨다.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었다. 자주 찾아뵙고 연락드리고 해야 하는데, 내 사는 모습이 변변찮으니, 마음과는 달리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그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중학교 시절을 떠올릴 것 같다. 그때는 참 재미있었다. 한참 사춘기 시절을 보내면서 시골 학교에서 친구들과 많은 추억을 공유하기도 했다. 군내 학교별 성적 경시대회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우승기도 받아왔었고, 남학생들에게 편지와 선물도 많이 받았다. 첫사랑도 그 시절이었으니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총각 선생님이었다.
중학교 1학년, 첫 시험 때였다. 그때는 전교에서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었다. 과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이번 시험에 과학 100점을 맞은 친구가 있다면서 나를 추켜세워 주셨다. 그때부터 선생님의 관심을 받으면서 다른 과목은 몰라도 과학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또 재미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물으면 항상 과학자가 꿈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난 완전 문과 체질인데 오로지 선생님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선생님과는 잊지 못할 추억 또 하나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시절, 비슷한 친구 한 명과 그 당시 선생님이 계시는 구미로 무조건 찾아갔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삼선짬뽕을 사 주셨다. 하얀 백 짬뽕을 그때 처음 보았고, 당연히 처음 먹어 보았다. 그때는 빨간 짬뽕도 겨우 먹을 수 있을 때였다. 그런데 하얀 짬뽕은 신기하고 맛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쳤는데, 철부지 같은 친구와 나는 그날 저녁 선생님 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 미안한 마음은 있었던지 아침에 선생님께 말씀도 드리지 않고 몰래 대구로 올라왔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어디 마음 둘 데 없는 방황 청소년이었다.
아무 희망도 없었던 학생을 제자라는 이유 하나로 밥도 사주시고, 잠도 재워 주시고 그때는 몰랐었다. 어른이 되어보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음을 알아간다.
그리고 23살, 나는 장애인이 되었다.
아마 친구들을 통하여 선생님도 나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많은 분의 도움으로 조금씩 재활을, 하게 되었고 지금의 복지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모두를 외면하고 지내다 어렵게 참석한 동창회에서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그때 선생님은 제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네가 사고 난 후 나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그때 선생님도 사모님이 편찮으시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너를 위로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라면서~~~
한번 선생님은 영원한 선생님이어야 하는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철부지 때 제자라고 이래저래 마음 아파하셨을 선생님께 도려 죄송하다.
참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저께 내 방을 불쑥 방문하신 선생님께서 ‘영수기 너 이제 몇 살이고?’라고 물으셨다. 나의 대답을 들은 선생님께서 한참 웃으시면서. ‘단발머리 심영숙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라고 하셨다. 어쩜 선생님께서 나보다 덜 젊어 보이셨다. 아니 같이 늙어가고 있었다.
동창회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욕심 많고 샘 많은 심영숙이,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샘이 나서 눈꼬리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곤 했었다”라고 하셨다.
지금은 새카맣게 잊어버린 일이었지만, 그때는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었고 나 혼자만의 선생님이길 희망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선생님은 이미 꽤 뚫고 계셨다는 걸, 중학생 꼬맹이가 알 리가 없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선생님께서 내 마음을 몰라 준다고 심통을 부렸으니 얼마나 못났을까. 삐뚤어진 눈꼬리와 엉클어진 심보가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귀엽기도 하다. 웃음이 나온다. 아니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그런 순수한 마음을 다시 한번 가져보고 싶다. 그때가 내 삶의 전성기였을까.
선생님께는 항상 좋은 것만 보여드리고 싶었고, 잘한 것만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내 속에 가득해서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늘 나의 모습이 초라했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이제는 조금은 그런 부담에서 벗어 나도 될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내 방문을 노크해 주신 선생님이 좋았다.
모든 걸 내려놓으시고 동네 아저씨가 되어 제자의 방문을 노크해 주신 선생님이 참 고마웠다.
그때 함께 선생님 댁에 갔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해 보았다. 30년도 더 지난 세월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친구의 목소리였다.
가끔은 연락하고 지내야겠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후회는 앞서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