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숙의 좋은 땅 / 김백기님의 「삶은 강처럼 흐른다」를 읽고

2025-05-07     뉴스메이트(newsmate)

 

                        심영숙 /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연휴다. 어린이날, 석탄일까지. 쾌재를 부르면서 이 시간에 책 한 권을 읽고 글 두 편을 써야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출발했다.

토요일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고, 어제 주일은 예배드리고 언니랑 차 한잔하고 들어오니, 또 하루가 흘러가 버렸다.

내일 하루가 남긴 했지만, 오늘도 벌써 반나절이 지나갔다. 어제 언니가 찌짐 구워 먹으라고 두릅나물을 주었다. 그냥 두면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생명을 다하지 못할 것 같아 아침 일찍 서둘렀다. 서툰 솜씨에 찌짐을 부치고 나니 벌써 10시를 넘어섰다.

아까운 시간을 부여잡을 수도 없고 그래도 위로를 삼은 것은 짬짬이 책 한 권은 다 읽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난달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된 김백기 님의 「삶은 강처럼 흐른다」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김백기 님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그래서 책이 출판된 후 사무실로 한 권을 들고 오셨다. 에필로그를 읽고 망설임 없이 이번 달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하였다.

이 책은 은퇴한 작가가 낙동강의 발원지인 태백에서부터 하류인 을숙도 하굿둑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며, 각 지역에서의 경험과 그에 따른 삶의 깨달음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냈다.

발이 닿는 곳곳마다 지역의 특수성과 그곳에 고향을 둔 성인들의 유적지를 그려내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셨는지 역사 공부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작가처럼 꼼꼼하지도 박식하지도 못한 나는 책 속에서 설명을 듣다 지쳐 어느새 샛길로 빠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샛길에서 만난 작가의 글은 재미가 춤을 추고 있다.

낙동강을 걸으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곳곳에서 만난 자연풍경 이야기다. 짬짬이 들려주시는 고향 부모님의 이야기는 우리 부모님 복사판이었다.

더욱 재미를 더한 것은 자연과 사람을 얼마나 잘 그려내셨는지 질투가 났다. 문장력이 너무 탄탄해서 부러움의 경지를 넘어섰다.

작가가 국민연금공단에 근무하셨을 때였다. 우리 복지관에 사회공헌 일로 또는 특강을 하러 몇 번 오셨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다. 동전이 생기면 모았다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고스톱 밑천으로 갖다 드린다고 하셨다. 그때도 그 마음이 너무 고우셔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도 부모님의 이야기가 곳곳에 나온다. 은퇴 후에도 일주일에 2∼3일은 상주에 계시는 부모님 댁에 가신다고 한다. 나도 시골에 살았고 오빠가 계시지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계시니까 그 일만으로도 존경의 마음을 담는다.

“그저께의 일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는데 어제 강에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똑같은 일이 재현될 조짐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습관적으로 도토리를 또 주워 오셨고, 역정 내면서 그 싫다는 도토리 손질을 역시나 하는 어머니를 본 순간, 저는 화가 치밀어왔고, 누르지 못했습니다. 내가 두 분께 뭐라고 큰소리를 냈는지 생각해 보니 이런 말이었습니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루도 웃으며 편하게 사는 날이 없네요. 지금 뭐가 중요한지 제발 생각 좀 하면서 사시라고요. 미워하느라 인생 다 가는 줄 모르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너무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우리 엄마 아버지도 참 끈질기게 싸우셨다.

우리 엄마는, 모내기를 해 놓고 아직 비료를 주는 시기도 아닌데 아버지 몰래 비료를 주고 오시곤 했다. 당장 비료를 주면 모가 새파랗게 잘 자란다. 어머니는 그게 늘 좋으셨던 거다. 그런데 아버지는 달랐다. 모가 겉 자라면 가을에 태풍이 오면 다 쓰러진다는 것이었다. 누구의 논리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두 분은 양보가 없다. 그래서 또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그 불똥은 내게 틔었다. 어김없이 엄마의 전화가 왔다.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다는 것이다.”

작가는 어머니의 또 다른 이야기로 웃게 한다.

“모친께서 절뚝이며 방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손에는 빗과 핀을 들고 왔고요. 헝클어진 장발의 형색이 못마땅하다며 나이 든 아들의 머리카락을 빗기고 귀밑머리 좌우에 핀을 꽂아 줍니다. 단정하게 만들려는 거죠.”

80대 노모가 60대 아들의 머리는 빗겨주는 모습을 상상하니 미소가 나온다. 분명 아들이 싫다고 도망갈 수도 있을 텐데, 엄마의 손길에 순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작가는 부부의 삶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어느 서울 부부의 여행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강에서 은퇴자의 여행을 생각한다. 자전거로 낙동강을 달리는 남편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따르며 저녁이면 만나고 아침이면 다시 각자 보고 싶은 것을 향해 따로 여행하고 있다.

서로 함께하면서 따로 즐기는 퍼즐 맞추기에 성공하여 멋진 조합을 만들어 낸 것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시골이 고향인 내게 작가는 또 하나의 동심을 선물해 주었다.

”하늘이라는 대형 스크린에 구름이 하는 놀이를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입니다. 시간을 잊은 채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갑니다. 풀 먹이러 강둑에 소를 풀어놓고 너무나 심심해진 나머지 구름 보는 것을 놀이로 삼다가 설핏 잠이 들었고 얼마나 지났을까 강둑에 있어야 할 소가 보이지 않아 화들짝 놀라던 그때를 떠올리며 빙그레 웃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소풀 먹이로 갔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해주었다. 소를 풀어놓고 동네 친구들이랑 감자도 구워 먹고 도랑에서 가재랑 다슬기를 잡으면서 놀았던 추억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너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 시절로 다시 여행하게 해 준 작가에게 감사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선비이야기나, 지리 이야기는 재미없어서 대충 읽고 지나갔었는데, 오늘은 시조 한 편 때문에 정독을 하게 된다. 안동풍산읍 소산마을에 병자호란 때 끝까지 반대했던 청음 김상헌의 시비 이야기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여 올동말동 하여라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시조 같은데, 아직도 외우고 있어서 덕분에 또 한 번 흥얼흥얼 읊어보았다. 감사하다.

장작 3백 페이지가 훌쩍 뛰어넘는 책의 끝부분에 도착했다.

”처음 들어섰던 겨울 강에 다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긴 강을 걸으며 흐르는 크고 작은 물줄기들을 보았죠. 어떻게 말없이 한 몸이 되어 큰물을 이루는지 합수와 합강의 위대한 포용을 묵도할 수 있었고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삼선약수의 지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받아들이고 뒤섞이면서도 마치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유유히 유장히 흘러왔습니다. 본류에서 갈라지는 작은 물길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셋강이라 하지만 이는 다시 본류와 합쳐지는 것을 말함이고 (중략)

넉넉한 강은 그 끝에서 말합니다. 모든 것은 흐른다고, 삶도 그렇게 흘러야 한다고 사랑도 미움도”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을 할 수 없어 그대로 옮겨보았다. 족저근막염이라는 발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낙동강을 완주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 글을 그저 앉아서 읽는다는 게 미안하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하여 작가는 독자에게 기쁨과 아픔을 함께 알려주었다.

먼저는 기쁨의 선물이다. 큰 흐름에서 벗어나는 작은 물길을 셋강이라고 한다고 설명을 한다. 그리고 작가의 버킷리스트 1번이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작은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완성을 셋강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고백한다.

”셋강은 꿈꾸는 자입니다. 셋강은 강에서 바다를 보는 자입니다.“ 라고 포부를 밝힌다.

또 하나는 글 속에서 자주 만났던 아버지 이야기다.

여든여덟 생신날 새벽,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오월의 봄볕을 따라가셨다고 한다.

”제가 걸었던 그 강은 아버지의 강이 되었고 아버지의 삶은 강처럼 흘러갔습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아버지 연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 강 같은 아버지, 강처럼 사셨던 아버지“

수많은 아픔과 기쁨을 다 품고 다 보았지만, 강은 말하지 않는다. 그냥 유유히 흘러간다. 우리의 삶도 그래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후회 없는 삶이 아니라 후회를 줄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작가는 다시 내게 귓속말을 해준다. 귀한 책을 선물해 준 작가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