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칼럼 / 食藥同源,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없다

2025-05-07     뉴스메이트(newsmate)
                                  최준영 / 언론인

계절의 시간표는 어김이 없다. 완연한 여름이다. 지난봄과 여름나물이 우리의 입맛을 유혹한다. 머위, 엄 나무순, 취나물, 두릅, 쑥 등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삼황오제(三皇五帝)인, 신농(神農)씨는 여러 가지 풀을 맛보면서, 사람이 먹을 수가 있는 풀을 골랐다. 이는 말하자면, 하나의 사실적인 역사가 아닌, 전설이다.

조선의 허준(許浚,1539~1615)은 모든 풀에서, ‘식약동원’을 골라냈다. 이건 전설(傳說)이 아니고, 한의학(韓醫學)의 산 역사이다. ‘식약동원’은 먹은 음식(飮食)과 약(藥)은 그 근원에서, 같다는 말이다. 또 다르게 번역하면, 내가 먹은 음식이 나의 건강수명을 연장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연장은, 평생 건강하여, 하늘이 나에게 준, 천수(天壽)를 다 누린다는 것이다.

세계기록유산(2009년)인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은 국가유산청의 국보 제319호이다. 중세 동양 최고의 의서(醫書)이다. 국외에도 의서(醫書)로 소개되었고, 수차례나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됐다. 다국적 의서이다.

‘우리 선조들은 음식에서 얻는 힘은 약에서 얻는 힘의 절반 이상이 된다고 봤다.’ 몸이 아플 때 약을 먹기 전에 먼저 음식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썼다.

서양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도 이와 비슷한 가르침을 남겼다. 건강에 있어, 식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는 ‘식품은 약이 되고’, ‘약은 식품이 되게 하라’고 말했다.

우리 인류는 최초에 그 어떤 것으로 ‘첫 맛’을 느꼈을까. 아마도 첫 맛은 ‘소금’일 터다. 소금에서 다음은 조미료이다. 조미료에서 한 발짝 더 나가서, 이젠 효소(酵素)이다. 지금은 효소시대이다.

한국에선 최고의 효소는 김치이다. 된장, 조선 지릉(간장의 사투리)이다. 김치는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됐다. 김치가 아닌, 김치를 함께 담그는 문화, 그 자체였다.

우리에겐 음식문화에 대한, 고서(古書)가 많다. 많다는 뜻엔 그만큼, 허준의 식약동원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한다. 1670년 현종 11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貞夫人 安東 張氏)가 쓴 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다. 음식디미방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이다.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이다. 현재 경북대학이 소장한다.

규합총서(閨閤叢書)는 1809년(순조9년) 여성 실학자이자 서유구(徐有榘,1764년~1845년)의 형수인 빙허각(憑虛閣) 전주 이(李) 씨가 아녀자를 위해 엮은 일종의 여성생활백과이다. 오랫동안 작가와 발간 연대를 알 수 없었다. 1939년 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가 발견되면서, 규합총서가 이 책의 1부 내용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현대판 의학발전엔 신문기자(新聞記者)가 한몫했다. 윌리엄 더프티(William Dufty,1926~2002)기자는 ‘정제 설탕’의 해악(害惡) 파헤친, <뉴욕 포스트> 특종 기자였다. 윌리엄 더프티 기자는 각설탕과 몰트 초콜릿 중독자였다. 그는 피부병에서부터 심각한 질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병을 앓았다.

더프티 기자는 30대 후반이었던, 어느 날 몇 달간 지중해 인근 시골로 현장 취재를 갔다. 더프티 기자가 머물던 마을에선, 각설탕도 초콜릿도 캔디도 달콤한 음료수도 없었다. 검은 빵과 채소만 먹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기가 앓던 여러 가지 병증(病症)이 호전(好轉)되거나, 사라졌다. 설탕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설탕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취재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책이 수백만 부나 팔린,『슈거 블루스』(sugar blues)다.

1793년 설탕을 가득 실은 영국 화물선이 기관 고장으로 9일 동안이나, 바다를 표류했다. 살아남은 선원 5명도 거의 죽음 직전이었다. 물만 먹고도 최대 15일 이상 버틸 수 있는 인간이 어떻게 9일 만에 죽었을까.

설탕과 럼주(rum酒)를 먹은 선원들이 물만 먹은 사람들보다 일찍 사망한 이 사건은 ‘설탕 유해 논쟁’의 시발점이 됐다. 이 같은 시발점에서 이제부턴, 무가당(無加糖)이 대세를 잡는다. 요새엔 무가당인 빵 종류나 과자, 두유 등을 들 수 있다.

‘식약동원, 디미방, 규합총서’로 잘 차린, 밥상은 건강 예술(藝術)이다. 이건 <맛의 미학(味學)>에서 <건강의 노둣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