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숙의 좋은 땅/ 나민애님의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를 읽고

2025-08-05     뉴스메이트(newsmate)

 

                 심영숙/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

이번 달 책 선정은 김서현샘이 고른 책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서현샘의 블로그 닉네임(빛나는 똑똑이)이 먼저 떠 올랐고, 다음으로 든 생각은 “요즘 서현샘이 많이 힘든가.”라는 생각이었다. 늘 반짝이고 싶어 노력하는 친구인데 어떻게 하지. 라면서 책을 펼쳤는데 그 힘듦을 고려하는 건, 후 순위로 미루어졌고 책의 문장이 반짝반짝 빛났다. 한마디로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최소한 내게는 서울대 교수, 나태주 시인의 딸, 어느 명성에도 누가 되지 않은 글이었다.

작년 연말에 복지관에서 발송하는 연하장 인사말을 쓰면서 나태주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였던 기억이 있다. 나 혼자 괜히 인연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반갑게 작가를 만났다.

글 곳곳에 쉬어가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작가는 그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죽어라 공부를 했고, 직장에서도 많은 일에 묻혀 살았음을 글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얄밉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책의 재미에 홀랑 빠져서 책을 선정한 서현샘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두 분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장영희 교수의 글 이후로 오랜만에 맛깔스러운 작가를 만나서 책을 읽는 내내 「부럽다.」 「재미있다.」를 연발한 것 같다.

책 외에 작가의 강의는 없을까라는 생각에, 유튜브에 이름을 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유명한 프로그램은, 이미 다 선점을 하신 분이었다. 세바시에서도 특강을 하셨고, 그 유명한 유퀴즈 온 더블럭에도 나오셨다. 역시 나만의 편견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듯하여 기뻤다.

이 책은 4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단락은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이다 여기에서 「나만의 비밀 방공호」의 일부이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이 방공호를 만들고 살았다. 박남수의 시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는 한국전쟁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이 시를 보면 할머니가 말없이 꽃씨를 받는데, 그곳이 바로 할머니의 방공호다. 여기서 방공호는 일종의 '재생'이고 '생명'이다. 도망가야 살 때가 있다. 방공호에 숨어야 숨 쉴 수 있을 때가 있다. 중략~~

내가 주인인 나의 인생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만 같다. 나의 인생을 살릴 방법은 나만 찾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사무칠 때는 시를 읽으러 간다. 나를 살리러 가야겠다.

작가는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는 것을 방공호라고 표현했고, 작가의 방공호는 시를 읽으로 간다고 했다. 내게는 나만의 비밀방공호가 뭘까를 생각해 보았다. 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수다를 떤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라면서 그러면 조금은 속이 후련해진다.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에게 이미 다 떠벌리는 일이다. 더 멋있는 나만의 방공호는 뭘까. 작가처럼 좀 있어 보이는 방공호를 찾아 두어야겠다. 나만이 숨어서 숨 쉴 수 있는 곳, 그 방공호를 빨리 찾아야겠다.

두 번째 단락은 애쓰지 않아도 충분하다.이다. 이 단락에서 「지금으로도 충분해」라는 글속에 문장을 옮겨본다.

”스물셋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스물여섯에 결혼했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에 내게 말했다. 내가 뭐든 열심히 해서 예쁘다고. 그런데 결혼한 뒤에 남편은 달라졌다. 그는 뭐든 열심인 나를 멈추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예전에는 열심히 해서 예쁘다더니, 이제는 예쁘지 않아도 좋으니 열심히 하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때 알았다. 남편이 나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흔해 빠진 게 사랑이라 해도, 나에게 남편의 사랑은 특별하다. 그는 이 세상과 다른 말을 해준다. 세상이 나에게 "더 달려"라고 말할 때, 남편은 나에게 천천히 걸어도 된다"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부족하다"라고 말할 때 남편은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 같다. 이것이 내가 만난 사랑의 효과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 그것이다. 부부간의 사랑,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 이런 글을 만날 때면 그렇다. 아마 내가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도 그랬다. 남편이 하는 외국어 같은 말을 알아듣고 그것이 사랑의 효과라고 말하는 작가가 부럽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넷플릭스 시리즈 ‘폭삭 속았수다’를 보면서 생각했다. 주인공 애순이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남편의 그 지극한 사랑 하나가 있었기에 인생을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었으리라. 그냥 부러울 뿐이다.

세 번째 단락은 아픔도 때론 힘이 된다.이다. 여기서는 「키 작은 해바라기의 사랑」을 골라보았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뭘 하든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인데, 하지 말라고 하신 게 한 가지 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한테 받는 것은 감사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며 아버지는 이 말을 못 쓰게 했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어쩌면 아버지는 본인이 가장 살고 싶은 삶을 자식을 통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분에 넘치게 사랑받는 삶, 사랑받는 게 당연한 삶. 그래서 키가 무럭무럭 자라고 등이 굽지 않는 삶 말이다. 영양학과 유전학 같은 건 잘 알지 못한다. 심증이지만, 우리 아버지의 키가 작고 등이 굽은 건 영양이나 유전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양과 색깔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보면 때로 나만 키가 큰 것이 좀 미안하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아버지의 등을 툭툭 친다. 키는 못 커도 늦게라도 등이 펴졌으면 하고. 그러면서 생각한다. 해바라기가 늘 큰 키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구나. 키가 커야만 해바라기인 것도 아니구나.​”

키가 작지만 아버지는 해바라기이시고, 아버지가 아버지의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은 그 양과 색깔이 달라서 키가 크지 못했지만. 그 사랑을 작가인 자식에게 쏟아부어주 주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부럽다 못해 감탄스럽다. 결핍을 사랑으로 연결한 작가와 아버지의 모습에서 꼭 충분함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번 새겨보게 된다. 아버지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비록 작은 키를 가졌지만, 해바라기였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어떻게 하면 잘 승화시킬 수 있을지. 나의 휠체어도 언젠가는 해바라기가 될 수 있으리라. 키가 작아도 아니 키가 커야만 꼭 해바라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네 번째 단락은 이 책의 제목인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 에서 한 문장을 들고 와본다. ‘나무 모종을 심는 어른이다.’

“나는 종종 박목월 시인이 심어주신 서천의 감나무를 떠 올린다. 그 나무가 자라면서 나도 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을 당시, 박목월 시인의 큰 아들인 박동규 선생님이 우리 과 교수로 계셨다. 나는 그분을 통해 아버지의 스승인 박목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아버지가 좋아한 스승이었기에, 나에게도 박목월 시인은 '참 좋은 할아버지'라는 이미지로 기억된다. 요즘은 박목월 시인에 대한 논문을 세편째 쓰고 있다. 덕분에 밤낮없이 박목월 시인을 생각한다. 옛날 잡지를 모조리 뒤져서라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찾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분이 우리 부모님의 결혼식 날에 심은 건 나무 이상이었다. 그날 심긴 감나무는 우리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감나무에 감이 달리듯 시인의 감나무에서는 '시'라 는 감이 주렁주렁 달렸고, 그런 아버지에게서 내가 나왔다.”

부럽다. 박목월 시인, 우리가 책에서만 보아왔던,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외웠던 청록파시인, 그분이 아버지의 결혼식 날에 감나무를 심어주셨고, 그 나무에서 감도 열리고, 시도 열렸다. 감나무를 심어주신 분도, 그 감나무에서 시라는 열매를 맺게 하신 분도, 그 대를 이어, 멋진 작가를 배출한 것도. 그리고 작가도. 모두가 훌륭한 분들이다.

이제 이 책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러웠던 게 있다. 아버지가 유명한 시인이라 것도 부러웠지만 더 부러운 것은 그와 맥락을 같이 하겠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늘 집에 책이 보물처럼 쌓여 있어서 엄청나게 읽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글솜씨에는 그 배경이 뒷받침이 된 거 같아 한없이 부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많이 늦었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섬섬옥수 아름다운 문구와 문장력이 뛰어난 귀한 책을 우리에게 선물 해준 작가에게도, 이 책을 선정한 서현샘에도 고마운 마음을 담으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작가는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고 했는데.

해바라기가 늘 큰 키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키가 커야만 해바라기인 것도 아니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