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곤 칼럼 / 촉식(觸食)

2025-08-10     뉴스메이트(newsmate)

‘촉식(觸食)’이라는 낱말이 있다. 닿을 ‘촉(觸)’, 먹을 ‘식(食)’인 이 말의 뜻은 ‘생존을 유지 시키는 감각 작용’ 또는 ‘먹는 음식 또는 음식을 먹는 방식을 이르는 말’로 정의되고 있다.

‘촉식(觸食)’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네 가지 먹는 것, 즉 사식(四食)을 알아야 하는데, 사식(四食)은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4가지 음식이다. 첫째, ‘단식(段食)’은 음식물을 입으로 먹어 신체를 유지 시키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물질적인 음식물을 먹는 행위로, 일반적으로 밥, 빵, 채소 등을 입으로 먹어 몸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사식(思食)’은 생각으로 신체를 유지 시키는 활동으로, 특정한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 어떤 결과를 바라는 의도 등 생각을 통해 몸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식식(識食)’은 아는 마음으로 신체를 유지 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 작용, 즉 앎으로 어떤 대상을 식별하며 몸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네 번째의 ‘촉식(觸食)’이다. 이는 기쁜 마음을 일으키는 기능을 통하여 신체를 유지 시키는 것으로, 말하자면 감각기관이 외부 대상과 좋게 접촉하면 그럴수록 더욱 신체를 잘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어느 잡지가 ‘사식(四食)’을 다루면서, 우리의 식생활에 대해 많은 걱정을 나타낸 적이 있다. 요즘과 같이 먹거리가 풍부한 시대에 배부른 음식이나 맛만 좋은 음식보다 건강한 음식이 대세이니, 그런 음식 중에는 꼭 입으로만 먹는 것에 한정하지 말고 눈으로 보거나 마음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음식도 있음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 음식이라는 것을 ‘몸에 들어가는 것’으로만 관심 가질 뿐, 정작 우리 ‘마음에 들어가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먹는 것’=‘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고자 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 ‘촉식(觸食)’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몸에 좋은 것을 골라서 먹듯이, 마음에 담는 것도 잘 골라야 한다는 의미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건강에 당연히 좋듯이, 좋은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도 몸이 건강해진다는 뜻이다. 나쁜 음식을 몸으로 받아들이면 건강에 해롭듯이, 나쁜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곧 건강을 해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말은 쉬운데 현실에서는 모호하다. 입으로 먹는 음식은 거기에 들어간 원재료나 그것이 얼마나 영양가 있느냐에 따라 우열을 정할 수 있지만, 마음에 담는 대상 중에는 어느 것이 좋고 나쁘냐 하는 것을 판단하기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것에 대해 접촉하고 싶지만, 어느 것이 몸에 좋은 것인지 미리 그 판단을 하는 일이 어렵다는 뜻이다.

더구나 요즘과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졌으니, 음식을 먹어 배가 부르듯, 어느 정보를 받아들여 정신적인 가치를 높일 것인가 하는 판단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기기를 사용할 때 우리 뇌에는 수많은 정보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으니, 내 몸을 건강하게 할 좋은 정보가 그 중에 무엇인지 알아내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는 것이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맛있는 것이 끊임없이 상에 올라오니까 어느 것은 먹고 또 어느 것은 먹지 않아야 할지를 따질 겨를이 없이 쉬지 않고 꾸역꾸역 먹고 있는 장면과 같다. 소화가 제대로 될 리 없을뿐더러 어느 것이 내 몸에 더 좋은 것인가를 생각할 틈조차 없게 된 것이다.

어느 수필가가 대학 다닐 때, 특정 유행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유행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기에 그로서는 뜻밖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아침 버스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일 뿐이라는 것이다. 무심히 흘려들은 멜로디가 그 자신 내면에 잠들어 있다가 어떤 순간에 의식 위로 떠오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보고 들은 것은 우리 안에 쌓여 있다는 설명이다. 이게 바로 ‘촉식(觸食)’이다.

‘촉식(觸食)’은 먹는 것을 단순히 음식만을 섭취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적인 받아들임이다. 이를 통해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정신 영양분인 것이다. 우리에게 정신적 좋은 먹거리를 받아들이는 ‘촉식(觸食)’에 대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