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칼럼 /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제목으로 내건, 한 줄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라는 시(詩)서 따왔다. 우리는 지금 고향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산꿩이 알을 품지도 않는다.’ ‘뻐꾸기도 울지 않는다.’ 그래도 있다면, 신문에 날게다. 지금 고향은 도시화됐기 때문에 그렇다. 도시엔 도로와 건물이 꽉 들어차 있다. 이런 도시 큰 도로는 자동차만 달린다. 사람이 다닐 인도마저도 있는 둥 마는 둥, 비좁기만 하다.
시(詩)는 태생적으로 세상에 나오자마자, 시인(詩人)만의 메타포(metaphor;은유)가 아니다. 읽은 이들의 메타포로 길항(拮抗)·확장한다. 이에 동의한다면, 제목으로 내건 것서, 오늘의 문제는,「건만」으로 보고자한다.「건만」서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와 연결하여, 오늘의 ‘도로·지진’문제를 톺아본다.
연합뉴스와 뉴시스 등의 최근 보도를 종합하면, 3월 25일 오토바이를 타고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 인근 사거리서, 땅 꺼짐에 빠져,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5월 6일 서울시에 따르면, 3월 25일부터 4월 2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시에 접수된 땅 꺼짐 등 관련 신고는 1천450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신고가 50건씩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사고 당일인 3월 24일까지 83일 동안 접수된 신고는 1천857건이다. 하루 평균 22.4건 꼴이다.
5월 12일 대구·경북 지역선, 포항시 남구 장기면 대진리 해안 도로에서 땅 꺼짐이 발생해, 지게차가 빠졌다. 같은 달 31일에는 대구 동구 방촌동 금호강 제방 옆 도로가 가로 50㎝, 세로 30㎝, 깊이 1.7m 규모로 꺼진다. “돌다리도 두드려가면서...” 내 앞의 도로가 아스콘으로 튼실하게 포장한 도로까지 이젠 “두드리면서 가야할 판”이다.
여기서 글 걸음을 지진(地震)으로 간다. 5월 5일 오전 7시 53분쯤 충남 태안군 북서쪽으로 52㎞ 떨어진 해역에서 규모 3.7의 지진이 발생한다. 원자로 발전소가 많은 동해안지역 경주시 남서쪽 17㎞ 지역에서 이날 오후 7시 55분 7초께 규모 2.0 지진, 오후 11시 8분 53초께 규모 2.5 지진이 연거푸 발생한다.
5월 10일 오후 1시 19분께 경기 연천군 북북동쪽 5㎞ 지점에서 규모 3.3 지진이 발생한다. 오후 2시 59분께 연천군 북북동쪽 4㎞ 지점에서 규모의 2.5 지진이다. 6월 12일 낮 12시 22분께 경북 영덕군 북쪽 21㎞ 지점에서 규모 2.0 지진이 발생한다. ‘땅 꺼짐’과 ‘지진’이 난, 날짜를 보면, 거의 동시다발적인 느낌이다.
땅 꺼짐이든 지진이든 우리 속담으로 말하면, “보리방귀 잦으면, 설사(泄瀉)한다.” 이 같은 설사를 하인리히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 여행자 보험회사에 근무했다. 다양한 사고 통계를 접했다. 사고의 인과관계를 계량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 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다. 더 전에는 부상을 일으키지 않은 300번의 가벼운 실수가 있었다.
여기서 밝혀낸 수치서, ‘1:29:300 법칙’이 생겼다 이게 ‘하인리히 법칙’이다. 1931년에 펴낸 그의 책서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단순히 산업 현장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과 사회로 확산했다.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이 아니고, <운다 이면>, 땅 꺼짐도. 지진도 아무 탈이 없을 게다. 게다가 우리에겐 하인리히 법칙도 별무소용이다.
하지만 땅 꺼짐으로 사람이 죽는다. 지진은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땅 꺼짐도, 심지어 지진도 인재(人災)라는 데에, 문제의 근원이 있다. 자연은 중인연생(衆因緣生)으로 얽히고 섞여있다.
얽힌 중인연생서, 어느 한 곳의 자연을 해코지하면, 중인연생에 따라, 다른 곳서, 탈난다. 지진은 그 옛날에 자연재해로 봤다. 현대문명은 아니리라고 말한다. 한국에선 포항지진이 인재의 대표성을 띈다.
돈벌이를 위해 아파트가 높을수록, 땅을 깊게 파헤친다. 파고 메울수록 인재의 원인이 된다. 먹는 샘물도 깊게 파야만, 잘 팔린다. 어느 산유국(産油國)에선, 석유를 뽑기 위해, 하도 땅을 깊게·많이 파서, 건물 전체가 땅 꺼짐에 쏙하고, 들어갔다는 외신 보도다.
이게 이윤창출이다. 자본이 사람을 지배한 다음엔, 이젠 자연을 지배한다. 자본이 인류와 자연을 지배할수록 인류도 멸종희귀종이 된다. 하늘이 꺼진다는, 기우(杞憂)인가. 아니다. 종말(終末)한다.
현생인류(Homo sapiens)도 벌써 3번이나 종말(終末)한 다음의 4번째의 인류이다. 이건 관련학계의 거의 일치된 견해이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에 따르면,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 1분 전이다.
우리는 이 같은 1분 전에 경악(驚愕)해야 한다. 경악서 중인연생의 자연은 자본창출의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자연의 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늦깎이>지만, 지금 깨달아야한다는 뜻이다. 이 텃밭서 생명존중사상 새싹이 튼다. 4번째의 인류가 종말(終末)한 다음의 호모사피엔스가 나오기 전에 말이다.
여기서 하인리히 법칙의 외연을 확장하여 끝까지 밀고가면, 땅 꺼짐은 지구의 반대편까지 뚫린 원통 같은 훤한 구멍이 생길까. 이런 지구서 사람은 어디서 피난살이할까. 자연재해 지진이 발생한다면, 어디든 피신할 곳이 없을 것이다. 이는 정지용의 시(詩)서, 「건만」을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한다.
아니다. 정지용 시인은 「고향」서 다른 시어(詩語)로 말한다.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