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곤 칼럼 / ‘잘라파고스’
'잘라파고스' 이 말은 ‘일본(Japan)’과 ‘갈라파고스(Galapagos)’의 합성어다. 전자산업으로 세계적 선두 주자였던 일본이 자신들의 방식만 고집하다 ‘갈라파고스’ 섬처럼 세계에서 고립돼 버린 상황을 빗대어 등장하였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미의 에콰도르 서쪽 바다에 있는 섬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수백만 년 동안 고립되어 전반적인 세상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자체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특정 생명체 즉, 거북이, 이구아나, 핀치새 등은 각각 자체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진화론의 근본이 되는 ‘환경에 따라 생물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고 하여, 세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갈라파고스 신드롬(Galapagos syndrome)’이라고 하여, 외부와 단절된 혼자만의 발전을 뜻하는 낱말로 현재 쓰이고 있다.
이를 ‘갈라파고스화(化)’라고도 하는데, 특정 첨단 기술이나 기법의 도입을 국제적 표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결과, 세계시장으로부터 점점 고립되어 가는 현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글로벌 현상에 반하는 의미로 이 낱말이 곧잘 쓰이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갈라파고스화’는 자주 목격된다. 특정 커뮤니티 사회가 외부의 추세나 흐름과의 교류를 단절한 채, 자신만의 문화를 고유하다고 집착하는 경우가 그렇다. 작게는 어떤 지역사회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외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을 형성하여 자기들끼리만의 가치관을 형성하여 다른 문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든지, 크게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신기술의 개발에 국제적인 흐름보다 우선 당장 필요한 국내 수요자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그렇다.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현재로서는 편리할 수 있겠지만, 이는 곧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이 경제 분야에서의 ‘갈라파고스화’다. 이는 지금 당장 매출액에서의 결함이 눈에 띄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결국은 소비자의 글로벌 추세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 때문에 독자적 생태계로서는 감당할 수 없게 되는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갈라파고스화’는 처음엔 ‘우리만의 발전’으로, 다른 사람의 부러움 속에서 계속적 발전이 담보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럴수록 외부 흐름과의 연결 부족으로 계속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할뿐더러 외부의 수요 파악에 한발 늦게 된다. 이는 성장의 한계로 돌아오게 되고, 모든 산업, 기술, 제도에서 세계적 표준화에서 멀어지게 된다.
개방화를 통한 표준화의 추구, 해외 기업과의 협업 구조, 국제적 인증 체계의 도입, 글로벌 사용자로서의 기술 도입 등의 문제에서 점차 도태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만의 생각에서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선택받으려면 당연히 ‘갈라파고스화’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대는 글로벌 경쟁 시대이므로 혼자만의 성공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외부와의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례가 바로 ‘잘라파고스(Japan+Galapagos)’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전자업체들은 혁신적인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세계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2000년대 스마트폰 등장 이후 전 세계 관련 산업이 모바일과 플랫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면서, 경쟁 관계에 있던 국가의 세계 표준화 추격이 강화되었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그때부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특유의 내수 시장 수요에만 집중하여 전반적인 세계 흐름을 놓치게 된 결과다.
그러나 한 뉴스에 따르면, 최근 일본 소니의 2023년 영업이익이 1조 2,088억 엔(한화 10조 7,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전문가는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에서는 수많은 기업이 장인 정신만 고집하다 무너졌지만, 살아남은 기업들은 대담한 혁신, 뼈를 깎는 구조 개혁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하였다.”고 하였다. 그런 부활은 바로 ‘잘라파고스’를 벗어나려는 노력 덕분인 것이다.
오늘날 ‘잘라파고스’라는 단어는 하나의 일과성 사례보다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준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갈라파고스’를 벗어나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