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숙의 좋은 땅 / “너가 있어 내 삶이 더 아름답다”

2025-09-08     뉴스메이트(newsmate)
                  심영숙 / 남산기독교좋합사회복지관 관장

「나의 소중한 영숙아.

평생을 추억의 아름다운 아이였을 영숙이가 새로 태어난 모습으로 내 곁에 나타났다.

심봉사가 청이를 맞이하듯 너의 손을 잡았다.

세월의 벽을 넘어 그때의 모습이

조금 확대되었다는 생각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더 성숙한 모습으로 만났다는 것 외에는 감정의 큰 변화는 없었다.

나를 찾아 준 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담임 시절 다 주지 못한 사랑을 찾아서 주고 싶구나.

 

                                             너가 있어 내 삶이 더 아름답다. — 2003년 6월 16일, 선생님이」

작년 여름, 긴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가끔은 생각한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생활까지는 감당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주어지는 욕창은. 거기까지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여기까지는 막아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던가. 하지만 어찌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될 수 있겠나. 또 내려놓게 된다.

수술과 입원으로 석 달을 자리를 비우는 동안, 직장 동료들에게는 미안함뿐이었다. 내 일을 대신 해주었던 부장과 직원들 앞에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병원에서 두 달간의 입원을 마치고, 아직 앉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에, 집에서 요양할 때였다.

책이라도 읽어야겠다고 한 권을 잡아 드는 순간 책 속에서 종이 한 장이 뚝 떨어졌다. 벌써 20년이 지난 선생님의 편지였다. 그날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학년 초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고 새로운 젊은 선생님이 우리 반에 오셨다.

갓 교대를 졸업하고 부임하셨으니 스물다섯, 스물여섯 즈음이었을까.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첫 제자였다. 산골 학교, 겨울이면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시골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하시면서 첫 교직을 시작한 선생님. 훗날 “그때가 참 힘들었다” 말씀하셨지만, 당시 선생님의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어느 날, 장래 희망을 그림으로 그려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국가대표 배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영숙아, 만약 직업이 열 가지 있다면 운동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한 가지이고 공부로 갈 수 있는 길은 아홉 가지란다.

선생님 생각에는 네가 공부를 하는게 좋겠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운동만 고집했다면, 20대 초반, 큰 사고로 장애를 만난 지금의 삶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선생님은 또 나를 도서관 청소 담당으로 임명하셨다.

그러면서 학년을 마칠 때까지 그 안에 있는 책을 다 읽으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넓은 도서관을 나 혼자 청소하라고 해서 투덜댔지만,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시절이었다.

아라비안나이트, 가난한 신기료장수, 안데르센 동화….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그때 내 안에 들어왔다. 돌아보니 그것이 선생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자 자산이었다.

장영희 교수나 나민애 교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꼈던 일이었다. 그분들의 주옥같은 글의 근원은 같은 영문학자와 시인으로 유명한 아버지 그늘에서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었다.

내게 그런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지만, 그런 선생님이 계셨다.

20대 초반,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타고 너무 힘들게 삶을 이어갈 때 나는 선생님이 떠올랐다.

세상을 다시 받아들이려 애쓰던 시절, 그분을 찾고 싶었다.

부산에서 교편생활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작정 부산에 있는 교육청을 인터넷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시는 학교를 찾았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시는 교무실로 전화를 돌렸다.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만이었을까. 나를 기억하고는 계실지.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등등

선생님의 제자라고 말씀드리고, 혹시 전화를 바꾸어 주실 수 있는지 정중히 여쭈었다. 교실로 전화를 돌려주셨다.

선생님이었다. 나의 이름을 듣는 순간 너무도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셨던 선생님~~ 그리고 얼마 뒤 선생님께서 책 한 권과 책 속에 예쁜 편지 한장을 동봉해서 보내주셨다.

“너가 있어 내 삶이 더 아름답다.

담임 시절 다 주지 못한 사랑,

이제라도 찾아서 주고 싶다.”

그 문장이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얼마 전 복지관 오뚝이교실에 한 아이가 전해준 “관장님 사랑해요~~”라는 작은 메시지에 얼마나 행복했던가. 우리 선생님도 그런 제자가 필요하실 텐데. 무뚝뚝한 이놈의 제자는 입을 테이프로 봉했는지.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어 글로 고백한다.

선생님! 제가 있어 선생님의 삶이 아름다웠다. 하셨듯,

저 또한 선생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잘 가르쳐주신 덕분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친구 같은 제자로, 오래도록 얼굴 마주하며 살고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