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숙 /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
   심영숙 /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

겨울의 중턱, 아마 이맘때쯤이었나 봅니다.

겨울방학, 초등학교 시절 세 자매의 시골 아침 풍경이 생각납니다.

시골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저는 오 남매 중 세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언니랑 오빠는 나이 터울이 많아서 함께 했던 기억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래 여동생 두 명은 세 살 터울이라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시골집이라 위풍이 세기도 했지만, 엄마가 아침을 차려 올 때까지 세 자매는 이불 속에서 서로 따뜻한 곳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이불을 잡아당기다 결국 싸움이 터지고 시끌벅적한 아침 시간은 아무런 놀이기구가 없어도 언제나 신났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등장은 모두를 평정합니다.

아침 소죽을 끓이고 난 뒤 숯불 아궁이에 우리 아버지는 감자를 수북이 묻어둡니다. 감자 익는 냄새가 바람결에 전해지면, 아버지는 갓 구워낸 감자를 한 바가지 들고 방으로 들어오십니다. 당연히 우리의 싸움은 휴전입니다. 아버지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잘 익은 감자를 고릅니다. 불의 열기가 고르지 않기 때문에 어떤 감자는 새카맣게 타고 어떤 감자는 덜 익어서 설경이는 것도 있습니다. 잘 익고 맛있는 감자는 언제나 막내 차지였습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아들 하나 더 낳으려고 마흔일곱에 막내를 낳았으니, 아버지의 늦둥이 딸, 막내는 항상 아버지의 웃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덜 익은 감자는 아버지의 몫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쯤으로 기억합니다. 대구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저는 오랜만에 맞이한 겨울방학을 동생들과 함께했습니다. 여전히 아버지가 감자를 구워 들고 오셨습니다. 동생들과 잘 익은 감자를 고르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언제나처럼 저는 “아버지는 덜 익은 감자를 좋아하시니까, 덜 익은 감자는 아버지 거~~~” 라면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는 평생 잊지 못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놈아, 아버지도 잘 익은 감자 좋아한다.” 순간 잠시 정전이 일면서 망치로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는 줄 알았습니다. 전 그때 알았습니다. 세상에 덜 익은 감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과 덜 익은 감자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는 것을요.

아침 출근길 멀리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안녕 영숙아! 바쁜 아침 시간이겠다. 밥 든든하게 먹고 휴가 한번 안 하니? 보고 싶다 잘 지내” 아무 내용도 없었는데 그냥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일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하는 친구인데 불쑥 보낸 문자는 친구의 마음까지 담아 왔습니다.

오늘은 아버지한테 전화 한 통 드려야겠습니다.

“아버지 날씨가 추운데 잘 계세요? 거기는 좋으세요? 보고 싶어요. 아버지~~

다시 만나면 잘 익은 감자는 아버지 드리고, 덜 익은 감자는 제가 먹겠습니다.

아뇨 감자보다 훨씬 더 맛있는 거 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차 조수석에 아버지 모시고 여행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힘들게 한 사람 아버지한테 일러줘도 되죠?”

하늘나라에 인터넷 선을 연결해야겠습니다.

“아버지! 엄마한테도 안부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 너무너무 고맙고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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