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였습니다.
거의 매일 휠체어를 밀고 다니니까 손바닥에 굳은살이 쌓여서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지고 딱딱할 때가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 악수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전 제 장애보다 더 부끄러웠던 것이 저의 손이었습니다. 한창 예쁘고 부드러워야 하는 아가씨의 손이 차돌 만지듯 딱딱하니 부끄러워서 손 내밀기가 여간 싫은 게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전동휠체어가 나오고, 수동휠체어를 탈 일이 많이 줄어들어서 굳은살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얼마 전 어느 행사장에서 타 장애인복지관 관장님과 악수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손을 잡는 순간, 그분의 손은 옛날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손보다 더 딱딱한 손이었습니다. 얼마나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으면 저럴까. 굳은살이 손바닥을 넘어 손등까지 툭툭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그분의 삶이 제 마음으로 훅 들어왔습니다. 그분은 때로는 목발을 짚고, 때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얼마나 많은 힘듦과 아픔이 있었을까.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셨을까를 생각하니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머리가 희끗해지고 철이 들면서 삶의 포용력이 조금씩 쌓여 가는 것 같습니다. 땀 흘린 대가로 얻어지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드럽고 작은 손도 예쁘지만, 열심히 살아서 쌓인 굳은살의 투박한 손도 삶의 훈장처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제일 처음 휠체어를 타야 했을 때, 그때를 생각하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나의 모습을 친구들이 보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 길에 버려두어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쳐다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반대로 도와주시는 분도 많았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삶은 누구나 힘든 여정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장영희 교수의 글 중에 “내가 살아보니까”라는 글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다른 사람은 내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든, 내 손에 굳은살이 쌓여서 딱딱하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이었을 텐데 괜히 나 혼자 부끄러워하고 주눅 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일찍, 버릴 건 버리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였으면 장애를 만나고 방황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싸늘하게 아파옵니다.
어느 날 보석 같은 문장 하나를 만났습니다.
“가짐보다 소중함이 잃음이라고” 잃음이 가짐보다 소중하다고 하네요.
이 말을 역으로 생각해 보니 남아있는 가짐이 얼마나 소중하던지요.
걸을 수 있는 다리는 잃었지만, 손도 있고,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모두가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게 훨씬 많았습니다. 다시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잃음의 소중함을 메워준 분들이 참 고마운 아침입니다.
그분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계절에
꽃길을 한번 걸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