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숙 /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
                   심영숙 /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

함께 살던 동생이 출장을 갔다.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하여 세면장으로 가다 동생 방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미 떠나고 없었다. 우리는 둘 다 서로에게 참 무심하다. 방문이 열려있으면 나갔나 보다. 라고 생각한다. 지난밤 짐을 꾸리는 소리에 몇 번 깨긴 해지만 이렇게 일찍 떠난 줄은 몰랐다. 방문이 열려있었다. 평소에도 나보다 일찍 출근하기에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오늘 아침은 다르다. 집이 휑하니 뭔가 허전하다.

며칠 전 동생이랑 한바탕했다. 언니가 오이소박이김치를 담아서 두 통을 가지고 왔다. 한 통을 다 먹고 난 뒤, 다른 한 통을 먹으면 좋을 텐데, 두통을 번갈아 먹고 있어서 한 소리 했다. 본인은 두 통인 줄 모르고 같은 김치라 그냥 먹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그 길로 삐쳐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해도 하지 않았는데 떠나 버렸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온몸으로 실감하는 아침이었다.

사실 동생이랑 한집에 살아도 우리는 서로 얼굴 볼일이 잘 없다. 일단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르다.

나는 정적인 것을 좋아한다. 동생은 반대이다. 근무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운동하러 간다.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어쩌다 주말에 같이 있어도 카톡으로 대화를 한다.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깨톡 하는 소리의, 대부분은 “뭐 하나 시켜 먹을까.” 정도의 대화가 전부이다. 그런 동생이었지만 막상 국내도 아니고 멀리 미국으로 출장을 가고 나니까 기분이 묘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집에 있는 게 무섭다. 그 무서움은 외로움도 아니고, 도둑은 더더욱 아니다. 나의 무서움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휠체어에서 떨어지면 혼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변기로 올라가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침대에 올라가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안 떨어질까, 고민을 해보지만 왜 그렇게 경우의 수가 많은지 모르겠다. 손에 물이 묻어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휠체어 바퀴에 바람이 빠져 밀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무뚝뚝하고 말 없는 동생이 구세주다. “금숙아~~”라고 부르면 달려와 준 유일한 룸메이트이다.

그날도 동생이 집에 없었는데 침대에서 떨어졌다. 혼자 올라가 보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올라가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그러기를 수 차례, 오기가 생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올라가 보겠다고 젖 먹던 힘까지 동원했다. 온몸에 땀 세례를 받으며 성공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해발 2m나 될까. 침대 위에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침대 모서리에 걸려서 엉덩이 피부가 다 벗겨졌다. 엉덩이 피부가 까지면 잘 낫지를 않는다. 그러다 욕창이 된다. 한마디로 살기가 싫었다. 이보다 더한 일도 분명 수없이 많았을 텐데, 또 생전 처음 겪어본 사람처럼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삶에 회의가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삶을 몽땅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어쩌랴.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걸.

다시는 그 같은 바보짓은 하지 않으리라.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얼마 뒤 또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침대에 걸쳐 놓은 나무다리가 미끄러졌다.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119에 전화를 했다. 죄송한 마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저~~ 좀 도와주세요” 아~~ “죄송합니다만 다친 데 없으면 지인의 도움을 받으세요” 다른 급한 일들이 많아서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마음이 아팠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동생 번호를 눌렀다. 멀리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걸 제쳐두고 달려왔다. 긴 기다림 끝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동생은 아기였다. 방과 후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들이랑 고무줄놀이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아기를 보라고 했다. 동생을 업고 고무줄놀이를 했다. 업고 노는 나도 힘들었지만, 등에 업혀 있는 동생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등에서 목이 찢어지라 운다. 아직 어렸던 나는 아무도 몰래 동생 허벅지를 꼬집어 버렸다. 업어주는 것도 싫은데 울기까지 하니 얼마나 미웠겠는가.

고무줄놀이도 등급이 있다.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고무줄 높이가 올라간다. 아기를 업고는 그 높이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놀이터처럼 만들어진 공동 우물가에 아기를 잠시 내려놓고 고무줄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그래도 작은 양심은 있어서 발은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동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고가 터졌다.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할 동생이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그 뭔가를 손으로 잡더니 바로 입으로 넣는 것이었다. 쫓아갔지만 이미 늦었다. 닭똥이었다. 시골에서 방목하던 닭들이 우물가에, 실례를 하고 간 걸, 바로 입으로 골인시킨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동생을 놀렸다. 닭똥 주워 먹었다고. 자기를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고 항의를, 하였지만 나의 답변도 일리가 있다. 너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해서 나도 속상했다고.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굳이 시비를 가린다면, 아들 귀한 집에 딸로 태워 난 게 죄이다. 누구에게 항의할 수 있을까.

동생이 출장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많이 남았다. 그때까지 나 자신과 내기를 하기로 했다. 하나는 휠체어에서 떨어지지 않기. 또 다른 하나는 떨어지면 도와줄 사람 찾기. 두 문제를 두고 내기를 해서 승자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무조건 전자가 승리해야 된다고 편파 판정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난 휠체어에게 정중히 부탁을 했다. 최소한 동생이 올 때까지는 떨어지지 말자고.

늦은 오후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다.

왜 이렇게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떨고 있을까. 떨어지면 또 어떠하리. 최소한 한 사람 정도는 달려와 주지 않을까.

그리고 떨어지는 날 보다 안 떨어지는 날이 훨씬 더 많은데, 왜 앞서 걱정을 하고 있을까.

그냥 오늘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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