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곤 / 시인ㆍ경북과학대학교 교수        
        김찬곤 / 시인ㆍ경북과학대학교 교수        

 

‘알묘’라는 말이 있다. 한글로는 같이 표기되지만, 한자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謁廟(알묘)’라고 쓰면 ‘사당에 참배하는 것’이고, ‘揠苗(알묘)’라고 쓰면 ‘이익을 보려다가 도리어 해를 당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도산서원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알묘 체험’과 같이 어떤 대상에 참배한다는 뜻이다. 종교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선현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다짐 같은 의식으로 많이 쓰인다.

문제는 후자의 ‘揠苗(알묘)’다. 이는 보통 “알묘하기 좋은 시기”라 하여, 얼핏 보았을 때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성싶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하는 의사결정이나 행동이 오히려 해로움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반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주식에 투자하면 여러 사정상 揠苗(알묘)하기 좋은 때이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揠苗(알묘)’의 한자 ‘揠(알)’은 ‘뽑는다’는 뜻으로, 어디에 박혀 있는 것을 뽑아낸다는 의미다. 풀을 뽑는다고 할 때의 그 ‘뽑는다’의 뜻이 ‘揠(알)’이다. ‘苗(묘)’는 싹이다. 씨를 뿌려 새싹이 날 때 그 싹을 ‘苗(묘)’라고 한다. 그러니까 ‘揠苗(알묘)’는 ‘새싹을 뽑는 행동’이다.

유명한 고전 ‘맹자’에 ‘揠苗(알묘)’가 나온다고 전해진다. 송나라 시대의 한 농부가 농작물이 빨리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이 심어 놓은 농작물의 싹을 하나하나 조금씩 뽑아 올렸다고 한다. 아주 조금씩 위로 뽑아 올렸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농작물의 키가 조금씩 커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잡아당겨 주면 더 빨리 자랄 것으로 생각했지만, 뿌리가 단단해지지도 않은 상태였으므로 조금씩이나마 뽑힌 싹들은 모두 말라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농부는 자신의 의도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하여 새싹을 위로 조금씩 뽑아 올리는 노력을 하였지만, 결국 그 싹을 죽이는 행동을 한 결과를 초래하였으니,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으니만 못한 일이 된 것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앞마당에 옥수수밭이 있었는데, 그 옥수수가 빨리 익기를 바란 나머지, 며칠을 못 참고 잘 익었는지 하루 이틀마다 껍질을 벗겨보았다. 옥수수는 겉으로 보아서는 잘 익은 것인지, 아직 수확하지 않고 기다려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워서다. 그래서 달린 채로 그 옥수수의 껍질 일부를 까보아서 익은 것은 바로 따내고, 익지 않은 것은 익을 때까지 며칠을 다시 기다리기를 반복한 것이다. 그때 덜 익은 채로 일부 껍질이 까진 그 옥수수는 제맛을 발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다름 아닌 ‘揠苗(알묘)’였다.

요즘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揠苗(알묘)’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과외 공부에 내몰리고, 소위 유명 강사를 집으로 불러 개인 교습을 하는 등 사교육비가 일상 생활비용보다 많이 소요되는 현실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교육환경을 최고로 갖춰주기만 하면 아이가 훌륭하게 자란다는 생각이 그런 풍조를 만연하게 하고 있다. 학교 성적에 대한 조급함 때문에, 아이의 모든 일정이 오직 성적을 스피드 있게 올리고자 하는 데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로서 갖춰야 할 아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꾸준히 기다려 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젠 시대적으로 뒤처지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인격 형성의 시기인 어린 나이에, 지나친 사교육의 폐단을 막자고 나서는 사람이 오히려 비난받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영어 발음을 잘하게 한답시고 성대 수술까지 한 사례가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분명 지나치다고 생각된다.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이라는 말이 있다. ‘서둘러 가려다 오히려 도달하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속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지나치게 서두르면 도리어 상황이 더욱 악화한다는 의미다.

비단 ‘揠苗(알묘)’는 단지 조기 교육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알맞게 제 속도로 잘 자라고 있는데도, 내 밭에 심어 놓은 작물의 싹이 이웃보다 늦게 자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조바심으로 싹을 뽑아 올리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揠苗(알묘)’의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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