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숙 /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
                       심영숙 / 남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

주일 아침이다. 일찍 눈을 떴다.

동생은 아직 자고 있나 보다. 방문이 고이 닫혀 있는 걸 보니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덜거덕 소리를 내며 아침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얼마 전 너의 딸 결혼식 잔상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하얀 드레스에 눈꽃처럼 예쁜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너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단다.

결혼식 한 달 전쯤 딸이랑 예비 사위를 데리고 우리 집에 인사하러 왔었지. 오랜만에 너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눈에는 너의 딸과 사위보다 네가 훨씬 크게 보였단다. 물론 일 년 전쯤 숙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잠깐 보긴 했지만, 그때는 경황이 없었고 오랜만에 편하게 너를 마주할 수 있었단다.

벌써 40년도 전의 일이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고등학교를 진학했을 때, 너는 대구 토박이로서 아주 멋진 도시 남으로 자리 잡고 있었지. 너랑은 사촌이기도 하지만 동갑내기여서 내게 너는 참 각별한 친구였단다. 너는 누가 보아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무엇보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멋진 남학생이었지.

그에 비해 나는 시골 때가 묻어 꼬질꼬질한 데다가 뚱뚱하고 못생겨서 나의 자존감은 늘 바닥에서 헤엄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런 나를 너는 사촌이라는 이름으로 잘 챙겨주었단다.

너는 기억에 없겠지만 여름방학 어느 날, 너랑 금오산에 놀러 갔던 일은 두고두고 내 기억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단다.

세월은 흘러 너는 소위 말하는 S.K.Y 대학 중, 한곳에 들어갔고 예쁜 여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었지. 그야말로 너의 삶은 순탄 대로였다. 단지 난 멀리서 응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삶은 늘 꽃길만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배워야 했다. 모든 걸 갖춘 너를 누군가는,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하는 일이 잘되지 않아서 가족들이랑 외국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한 번씩 네가 보고 싶고 생각이 났다.

숙모님께 전화를 드릴 때마다 너의 안부를 묻곤 했었단다. 하지만 숙모님은 나의 숙모이기 전에 너의 어머니였다는 걸 잠시 잊었다. 나보다 훨씬 더 너를 보고 싶어 하고 계셨기에, 어느 순간 너의 안부 묻는 것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런 네가 지난달, 딸 결혼한다고 나타났으니 참 반갑고 고마웠다.

그냥 가족들만 불러서 조촐하게 결혼하려고 했는데, 딸이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면서 꼭 결혼식에 와 달라고 했지.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탓에 하객이 없다는 말속에 딸을 끔찍이 사랑하는 너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단다.

청첩장을 받아 둔 순간 난 잠깐 당황했단다. 결혼식장이 대구가 아니고, 경기도 분당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 휠체어 타고 누군가의 혼인 잔치에 축하객으로 참석하는 것도 난 아직 힘든데, 그것도 분당까지 과연 갈 수 있을까. 그때부터 고민은 시작이 되었단다.

자가운전을 해서 가야 할 텐데.

편도 4시간, 최소한 왕복 8시간 이상을 차에서 보내야 하는데 괜찮을까. 늘 욕창에 시달리는 엉덩이는 과연 견뎌줄까. 게다가 그날 토요일은 나의 직장 복지관에서도 자원봉사자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일을 제쳐두고 결혼식에 간다는 것, 내 사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단다.

네 딸 성은이는 참 예쁘게 컸더라. 말끝마다 활짝 웃는 모습이 하얀 수국꽃처럼 복스럽더라. 마음 씀씀이도 얼마나 곱던지.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친절했던 너의 모습과 닮았더라. 게다가 든든한 직장까지 아빠의 똑똑함까지 닮았나 봐.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서 외국에서 자란 성은이는 스페인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더구나.

네 사위는 눈이 참 선하고 예쁘게 생겼더라. 새까만 속 눈썹에 크고 동그란 눈이 얼마나 예쁘던지 아마 딸을 낳으면, 인형처럼 예쁠 것 같아 벌써 기대가 되더라.

결혼식 당일, 모든 근심 걱정을 던져두고, 직장은 과감히 조퇴를 했단다.

동생이랑 언니 세 자매가 차를 몰고 경기도 분당으로 출발했다.

사실 야외 결혼식도, 국제결혼식도 모두가 어떤 풍경일까. 궁금하고 보고 싶었단다.

네가 미리 보내준 문자에도 식전 행사로 웰컴드링크와 스페인 소시지인 하몽으로 간단하게 목도 축이고 사진 구경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궁금증을 더했단다.

멋진 파티의 한 장면을 상상하며, 장거리의 고단함을 덜었단다.

스페인 소시지 하몽은 어떻게 생겼을까. 맛은 어떨까.

드디어 식장에 도착했고 예식이 시작되었다.

푸른 잔디밭과 색색의 꽃으로 단장한 결혼식장은 5월의 신부를 마음껏 환영하고 있었다. 하객의 반이 스페인 사람으로 가득 차서 여기가 스페인인지 한국인지 그야말로 글로벌한 축제장이더구나.

양가 부모님 맞절을 하는데 너의 부인, 올케는 90도 절을 하는데 신랑 엄마는 고개만 까딱하여서 모두 들 한바탕 웃기도 했단다. 스페인은 볼 키스가 인사라는 걸 그날 알게 되었지.

네가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데 나는 왜 그렇게 긴장이 되었을까.

딸 손을 잡고 들어가면서 분명 울 것 같아 마음 졸였단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들어가는 네 모습이 대견했다. 하지만 넌 그 웃음을 끝내 눈물로 마무리하고 말더구나.

신부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다가 한참을 읽지 못하고 울먹이더구나. “심성은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사랑이었고, 너의 뒤에는 항상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딸을 응원하는 모습에 나도 뭉클했단다.

나의 사촌아. 아니 나의 친구야.

이제 하나의 큰 숙제를 끝냈구나.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준비한 숙제였는지를 조금은 알기에 너의 숙제 노트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 싶다. 잘했다. 그리고 수고 많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손님들에게 식장에 장식된 생화를 한 묶음씩 선물로 주더구나. 아직까지 우리 집 화병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단다.

우리네 삶이 늘 저 꽃처럼 예쁠 수는 없겠지.

살아가는 동안 숱한 아픔과 기쁨, 그리고 슬픔 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그냥 색깔이 다른 한 개의 구슬이라 생각하고,

예쁘게 엮어 반짝이는 별로 만들어 보자.

너의 딸 결혼식에 초대해 줘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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