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의 반이 흘러갔다.
우리나라 박지성선수가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이야기다. 그는 “하프타임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후반전을 이기기 위한 작전타임”이라고 했다.
6월 마지막날, 하프타임이 끝나는 시간이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느냐고 묻는다. 물론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한 해의 반이 흐르기도 했지만, 나의 삶을 봤을 때도 반을 훌쩍 넘겼다.
내가 우리 복지관에 갓 입사했을 때였다. 행사를 마치고 직원들과 함께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갔었다. 식당에 들어서는데 그 당시 나의 선임이셨던 부장님께서 뜬금없이 “영숙아 너 왜 거기 앉아 있니?”라고 하셨다. 분명 나는 휠체어를 타고 부장님 뒤를 따라 들어가고 있었는데. 근데 함께 갔던 직원들이 동시에 까르륵 웃는 것이었다.
부장님께서 말씀한 영숙이는 식당 입구 선반에 멋진 포즈를 자랑하며 앉아 있었다. 누런 늙은 호박을 툭 치면서 “영숙아~~”라고 불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의 호박이 얼마나 탐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지. 호박은 흔히들 못생긴 사람의 대명사로 부르고 있다. 그 대명사를 나에게 적용한 것이었다. 직원들은 나에게 호박이라 불러서 좋은 건지. 본인들의 이름이 불리지 않아서 좋았는지 어쨌든 한바탕 웃었다. 덕분에 나는 졸지에 늙은 호박이 되었다. 하지만 부장님의 그 말씀이 싫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아니었겠지만, 난 누런 늙은 호박을 참 좋아한다.
나의 글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난 시골 촌뜨기다. 시골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상상하면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얀 찔레꽃도 그렇고, 산 중턱에서 뽑아 먹었던 삐삐도 그렇다. 또 보라색 감자꽃은 하얀색과 달리 얼마나 얄밉게 예쁜지 모른다. 이맘때쯤일 것 같다. 우리 집 앞마당, 담벼락에 노랗게 피어있는 호박꽃은 또 어떤가.
이른 아침 엄마가 반찬 하신다고 호박을 하나 따 오라고 하신다. 앞마당으로 가면 호박보다 먼저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호박꽃이다. 그 자태가 나의 글솜씨가 부족해서 미안하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어느 꽃보다 크기로 말하면 일등일 것이다. 약간 길쭉하게 피어나서 끝부분에서는 세상의 아픔을 자기가 다 감싸 안을 듯 활짝 벌리고 있다. 꽃의 색깔은 진노랑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연노랑도 아니다. 그냥 자연만이 표현할 수 있는 노오란 색이다. 그 아름다운 꽃이 시들어 떨어지면 조그마한 호박이 나온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신기하리만큼 쑥쑥 커가는 호박을 만날 수 있다.
애호박은 볶아서도 먹고 호박전도 해 먹는다. 엄마가 해주시는 애호박 요리 중에 단연 일등은 칼국수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직접 손으로 밀어서 칼국수를 만드셨다. 국수가 한번 끓어오를 즈음, 애호박을 썰어서 넣으면 그 맛을 어디에 비할까. 그리움이다.
그렇게 줄기차게 애호박을 따 먹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늦가을이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누런 호박이 무슨 보물 상자처럼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가 되면 호박잎도 떨어지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생명을 다한 모습이다. 하지만 모두가 끝이라고 했을 때, 그는 인생의 최종 승자처럼 “짠”하고 나타난다.
난 그 누런 호박이 좋다. 누가 그에게 못생겼다고 하는가. 나에게 그는 너무 예쁘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다. 그의 속은 더 예쁘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호박범벅은 입맛을 잃어 힘들어하는 이에게 위로의 죽이다. 노란 호박전은 또 어떠한가. 호박을 반 자르면 샛노란 속살이 드러난다. 호박씨를 걷어내고 호박 긁기 칼로 쓱쓱 긁어서 만든 호박전은, 둘이 먹다 하나가 없어져도 모를 맛이다.
몇 해 전 함께 일하는 김 부장이 시골집에서 다녀오면서 누런 호박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엄청, 크고 인물이 좋았다. 그해 설 명절 그 호박은 맛있는 호박전 이상의 가치를 뽐냈다. 세 자매가 모여서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 왔다. 손재주가 많으신 아버지를 추억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으신 호박 긁게 칼을 언니는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그 칼로 나는 호박을 긁었고, 언니는 전을 부쳤다.
우리 엄마는 특별 음식을 잘하셨다. 시골에서 두부도 직접 만드셨고, 조청도 만드셨다. 그중에 일등은 엄마가 구워주셨던 호박전이었다.
우리는 호박전을 앞에 두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부모님과의 추억을 나누었다. 그해 설은 누런 호박 때문에 꽉 찬 명절이 되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었지만, 인생의 큰 낙뢰를 만나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고 있다. 휠체어는 아니 삶은 참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작은 돌부리에도 걸리고 넘어졌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애호박이었을 때 주인을 만나 밥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뜨거운 뙤약볕도 만났을 것이고 홍수와 비바람도 만났을 것이다. 태풍도 만났을 것이다. 땅과 한 몸이 되어 바닥에 누운 채 썩어 없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버텼고 이겨냈다. 그래서 그는 누런 호박이 되어 누군가의 기쁨이 되고 있다.
한해의 반을 돌아가는 시간에 서 있다. 남은 삶도 이미 반을 훌쩍 넘겼다.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작전타임을 짜야겠다.
남은 삶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휠체어를 끌고 30년 고개를 넘어왔다.
마지막 남은 시간, 나도 누군가에게는 호박죽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호박전이 되고 싶다.
누런 늙은 호박이 되어 있을 때,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 주면 좋겠다. “영숙아~~~~”라고. 말이다. 그때는 활짝 웃어주고 싶다.